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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메모리 시대의 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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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1.14 14:00

    “D램과 낸드플래시 반도체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이제 노년기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기존 설계, 생산 방식으로는 더이상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AMD의 한 시스템반도체 엔지니어는 지난해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라데온테크놀로지 서밋’ 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기술이 미세공정 전환, 데이터 전송 속도, 대역폭 등 전자기기의 컴퓨팅 성능 향상 측면에서 사실상 한계치에 접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인텔, IBM, 삼성전자 등도 CPU와 메모리, 스토리지 간 성능 격차가 전체적인 시스템 속도 향상에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메모리의 벽’을 대외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기술의 노령화는 한동안 평화로웠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새 변수를 만들고 있다. 데이터를 저장할 메모리 수요는 급증하고 있고 인공지능, 자율주행 연구가 본격화와 함께 고속 컴퓨팅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반해 메모리 혁신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틈을 파고 들어 신기술 ‘3D 크로스포인트’로 무장한 인텔이 메모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했고 방대한 자체 수요를 내세운 중국은 ‘반도체 굴기'로 시장을 흔들 준비를 하고 있다. 메모리 파워 게임 70년을 되짚어보며 역사적 맥락에서 뉴메모리 암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본다.

    ◆ 범용성·생산성이 가른 D램 '왕좌' 50년 경쟁

    1947년 미국 벨연구소에서 발명된 최초의 트랜지스터 이후 인텔, NEC, 도시바, 삼성전자 등으로 이어져 온 70여년의 메모리 반도체 역사는 늘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한때 인텔 등의 미국 기업이 주도하던 메모리 시장 패권은 80년대 일본으로, 90년대 후반 이후로 한국으로 넘어온 이후 20여년동안 지속됐다.

     크레이그 베럿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04년 300밀리미터(mm) 웨이퍼를 선보이고 있다. / 블룸버그 제공
    크레이그 베럿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04년 300밀리미터(mm) 웨이퍼를 선보이고 있다. / 블룸버그 제공
    현재 D램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DDR(Double Data Rate) 기술은 처음부터 주류 기술이 아니었다. D램 시장 태동기에는 FPM 램, EDO D램, SD램, 램버스D램(RD램) 등 다양한 종류의 D램이 경쟁 구도를 이뤘다. 성능 측면에서 오히려 DDR D램은 RD램보다 전송속도, 대역폭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뒤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1997년 국제 반도체공학 표준 협의기구인 JEDEC(Joint Electron Device Engineering Council)이 DDR을 표준 기술로 내세우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원 사이즈 핏츠 올(One Size Fits All)'이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JEDEC의 설립 목적은 특정 기술 특허를 가능한 한 많은 업체들이 공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특허로 표준화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다. 표준화는 생산 가능한 업체가 많아진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부품 단가 하락으로 이어진다. IBM, HP, 델 등 주요 서버·PC 업체들이 JEDEC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D램 / 조선 DB
    삼성전자 D램 / 조선 DB
    인텔이 2000년대 들어 RD램을 확산하려고 시도했다가 쓴맛만 본 뒤 결국 DDR D램으로 시장 표준이 정해진 것 또한 JEDEC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실질적으로 JEDEC 내에서 가장 입김이 센 삼성전자가 DDR 기술에 RD램 기술을 일부 채용해 성능을 비약적으로 높인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램버스는 DDR D램에 램버스의 고속 데이터 전송 기술을 채택한 삼성, SK하이닉스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기도 했다.

    D램 시장 주류가 DDR 방식으로 정해진 이후로는 생산성 경쟁이 업계의 승부를 갈랐다. 2000년대 중반까지 가파른 공급량 증가를 나타내던 D램 시장은 2007년부터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에 진입하며 '치킨게임'을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엘피다(NEC+히타치+미쓰비시), 독일의 키몬다 등 굴지의 반도체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치킨게임으로 메모리업계의 불황은 2009년까지 3년간 이어졌다. 그 사이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강 구도로 정리됐다. 3개의 대기업이 남은 D램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상황이 지속되며 3사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고공 행진했다. 3사뿐만 아니라 난야, 윈본드 등 소위 ‘좀비기업’(이렇다 할 기술 경쟁력 없이 우호적인 시황에 의해 연명하는 기업)으로 불리는 기업조차도 100~20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기록할 정도로 초호황 국면이 이어졌다.

    ◆ 낸드플래시, '애플 아이팟' 등장과 함께 승기 잡아

    보조저장장치인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노어플래시와 낸드플래시의 경쟁 구도가 이어졌다. 인텔이 1988년 처음으로 개발한 노어플래시는 전원이 끊어져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플래시 메모리로, 데이터 라인이 병렬 구조로 연결돼 있어 데이터 읽기 속도가 빠르다는 강점 덕에 IBM, AMD 등 CPU 생산 기업이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노어플래시에 대항해 1989년 도시바가 발표한 낸드플래시는 대용량화가 용이하고 가격이 싸다는 강점이 있었다. 낸드도 전원 없이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노어플래시와 달리 좁은 면적에도 많은 셀을 만들 수 있어 대용량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노어플래시보다 생산 공정이 단순해 비교적 낮은 생산비용으로 대량 양산이 가능하고, 노어플래시보다 내구성이 강한 것도 장점이었다.

    노어플래시와 낸드플래시의 대결 구도 초반에는 인텔, IBM, AMD가 주도하는 노어플래시 진영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었지만 결국 가격이 더 낮은 낸드플래시를 선호하기 시작한 북미, 일본, 대만 등지의 PC 기업 사이에서 낸드플래시 채택이 늘기 시작했다. 여기에 삼성전자, 도시바 등이 경쟁적으로 낸드 양산을 늘리면서 가격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자 대중화 속도가 빨라졌다. 낸드플래시는 2005년 처음으로 시장 규모 측면에서 노어플래시를 앞지르게 됐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현 KT 대표이사)이 2006년 세계 최초 20나노 32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를 설명하며 ‘플래시토피아(Flashtopia)’를 선언하고 있다. / 블룸버그 제공
    황창규 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현 KT 대표이사)이 2006년 세계 최초 20나노 32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를 설명하며 ‘플래시토피아(Flashtopia)’를 선언하고 있다. / 블룸버그 제공
    최종적으로 승패를 결정지은 건 애플의 낸드플래시 채택이었다. 2005년까지만 해도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제품만을 출시하고 있던 애플은 삼성전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낸드플래시를 저장장치로 채택한 신형 아이팟을 출시했다. 바로 '아이팟 나노'다. 아이팟 나노 출시 이후 후발업체도 저장장치로 낸드플래시를 채택하면서 수요는 급증했다. 이후 휴대폰과 PC에도 각각 낸드플래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탑재되면서 시장은 계속 커 갔다.

    결과적으로 플래시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오랜 경쟁을 벌여왔던 낸드플래시와 노어플래시의 대결은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낸드플래시 진영의 압승으로 끝났다. 삼성전자가 플래시 메모리 표준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인텔은 임베디드용 노어플래시 생산 공정을 65mm로 전환하며 반격을 꾀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적자에 시달렸다. 인텔은 결국 2006년 노어플래시 생산을 핵심 조직에서 분리하며 패배를 선언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가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 2000년대 초반에는 지금과 달리 PC, 노트북 등 완제품 생산 기업들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시절"이라며 "DDR D램과 낸드플래시가 경쟁을 벌이던 제품들보다 성능 측면에서는 뒤처졌지만 생산성, 가격 경쟁력이 앞섰기 때문에 세트 업체들이 더 힘을 몰아줬고, 특허가 표준화되면서 다수의 업체가 뛰어들어 시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 “D램과 낸드플래시는 이제 노년기 접어들었다”

    이처럼 메모리 반도체 역사는 파워 게임에서 지면 무대에서 사라지는 ‘퇴출의 역사’에 가깝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십개 기업이 난립했던 메모리 시장에는 세계 전자업계를 호령했던 대부분의 기업이 떠나고 이제는 삼성전자 (1,556,000원▼ 42,000 -2.63%), SK하이닉스 (39,750원▼ 100 -0.25%), 마이크론, 도시바, 샌디스크 등 5~6개의 대형 기업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처음으로 D램을 개발했던 인텔을 비롯해 IBM, 모토로라, 지멘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페어차일드 반도체, 현대전자, LG반도체, NEC, 히타치, 미쓰비시, 키몬다, 엘피다, 프로모스, 파워칩 등 당대 내로라하던 반도체 기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철수한 상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주요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 경쟁, 기술 표준(범용화)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메모리 제품이 더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시장을 떠난 일부 사례도 있지만, 현재의 DDR 기반 D램과 낸드플래시 시대가 본격화될 것을 예상하지 못하거나 생산성 경쟁 구도에서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뒤처져 재무 건전성이 악화하며 사업을 접게 된 기업이 대다수다.

    소수 기업이 남아 호황을 누리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인공지능, 자율주행 기술의 등장으로 또 한 번 흐름이 바뀌고 있다. IT 업계 트렌드가 새로운 혁신을 필요로 하는 ‘고성능 컴퓨팅(HPC)’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2000년대 초반 이후 구조적으로 이렇다할 변화가 없었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성장성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D램, 낸드의 최대 강점인 생산성, 대용량화 역시 점점 한계치에 도달해 가는 미세공정 기술의 벽에 막혀 시간이 갈 수록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 최대의 매출 품목인 D램의 경우 커패시터(capacitor) 문제로 미세공정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텔 관계자는 "1947년에 첫 RAM이 등장한 이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10여년에 한 번씩 중요한 기술적 전환기를 맞이했었지만, D램과 낸드플래시는 각각 50년, 20여년 동안 메인스트림을 차지하며 장수하고 있다"며 "하지만 두 메모리 반도체의 아성도 IT 업계 흐름이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자율주행 자동차 등으로 넘어가면서 흔들리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변화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 역사를 살펴볼 때 현재 메모리 반도체는 기술적 대변환의 시점에 와 있고 새 기술이나 시장으로 한판 뒤집기에 나설 수 있는 파워 게임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대형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의 3D 크로스포인트 이후 불붙기 시작한 뉴메모리 경쟁도 결국 PC, 서버, 모바일 등 다양한 기업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작용하는 파워 게임이 될 것”면서 “최근 30년 동안 연이어 메모리 시장에서 패배를 맛 본 인텔이 이번엔 어떤 전략으로 전장에 나올 지 눈여겨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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