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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법칙 폐기]⑤ 

입력 : 2016.05.24 06:30

지난 3월 3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 제10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으로 취임한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사장)는 "반도체가 한국 대표산업이라곤 하나 그것은 메모리에 국한된 얘기"라며 "국제 경쟁 관계로 보면 한국 반도체 생태계는 아직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중국의 거센 추격과 신흥 업체·선두 기업을 가리지 않는 공격적 인수합병(M&A), 급변하는 기술과 시장환경 등 새로운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박 사장이 지적한 생태계의 문제는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산업과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산업 분야의 신규사업 확대와 창업을 지원하고 희망펀드를 조성해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기술자들이 투자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R&D(연구개발)를 통해 (중국 등의) 후발 업체와의 격차를 벌리고,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사물인터넷(IoT)·웨어러블·바이오 헬스케어·센서 등 미래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어의 법칙 폐기]⑤ 韓반도체 메모리·대기업 종속 생태계 손질해야
한국 반도체 산업은 박 사장의 지적처럼 D램이나 플래시와 같은 정보를 기억하는 장치인 메모리 분야에 편중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3배 크기인 시스템 반도체(전자신호를 제어하고 계산을 하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 업체들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삼성전자가 명함을 내밀 정도에 불과하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2014년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2719억1700만 달러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825억2600만 달러)의 3배였다.

시스템 반도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스마트TV, 자율주행자동차 등 IT 융합 기기에서 필수적인 초고속 통신 처리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앞으로 그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공세에 대응해 메모리 분야의 최고 자리를 지키는 동시에 취약점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생태계를 활성화 해야하는 이유다.

◆ "대기업 종속 해소하고 인재 유인책 마련해야"

① 대기업 종속 매듭 풀어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을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올려놨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반도체 장비·소재 업체나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들을 종속 관계인 협력 업체로 줄세우면서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가 대기업에 의존적인 허약한 구조를 갖게 됐다. 이는 중소업체들은 안정적인 매출을 내기 위해 대기업에 발맞춘 제품에 집중했고, 대기업은 경쟁사로 영업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한편, 협력사 관리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공급망을 두텁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소업체들의 가격과 생산 능력은 대기업이 바라는 대로, 하라는 대로 결정됐다. 제2의 삼성이나 SK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서울 소재 전자공학과 교수는 "대기업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고치기 위해서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수출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출을 통해 공급처를 다각화하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반도체산업협회나 기관들이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주면 대기업들의 눈치를 덜 봐도 될 것"이라고 했다.

휴대폰 카메라 내부에 장착되는 '자동초점 구동칩(Auto Focus Driver IC)'을 설계하는 동운아나텍은 일본과 중국 진출에 ‘올인'하면서 대기업 종속에서 벗어난 사례로 꼽힌다. 동운아나텍의 AF 세계 시장 점유율은 36%이다. 특히 중국에선 50%를 점유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② 인력 확보 시급

중소업체에 가장 시급한 건 우수한 인력 확보다. 그러나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대학생들로부터 외면받으면서, 국내 중소 반도체 업체는 매년 필요한 인력의 절반 정도밖에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입사지원자가 넘쳐나지만 중소반도체 업체의 인력 가뭄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는 4000명의 인력을 고용하려고 했으나 관련 공급 인력은 2000명 수준에 그쳤다. 서울대에서 배출하는 반도체 분야 석·박사 인력은 2005년 약 100명에서 10년 만에 40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대만의 경우 중소 업체들이 스톡옵션 등 유인책을 통해 고급 인력을 확보하지만 국내 반도체 업체는 대부분 영세해 별다른 유인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예산이 줄어드는 점도 한몫한다.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확정한 올해 정부 예산에 따르면 ‘전자정보디바이스 산업원천기술개발 사업’ 예산은 540억원에 그쳤다. 전자정보디바이스 산업원천기술 개발 사업은 2009년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LED 분야의 국가 핵심기술 개발 계속사업으로 추진돼왔다.

이 분야의 R&D 예산은 2011년 1312억원에서 2016년 549억원으로 불과 5년 사이에 60%가량 삭감됐다. 이 예산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LED 등 3가지 분야의 원천기술 개발이 포함되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반도체 분야 정부 R&D 예산은 200억원도 안되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 대만 기업들이 한국의 은퇴자 등 고급 인력을 영입해가는 점도 인력 가뭄을 부채질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기술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 뿐아니라 인력 양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20년 이상 1위를 지키고 있다 보니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오히려 소홀해지는 것 같다”며 “이는 일종의 삼성전자 착시 현상으로 무엇보다 인력 육성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밝혔다.


[무어의 법칙 폐기]⑤ 韓반도체 메모리·대기업 종속 생태계 손질해야
③ “창업·연구 지원할 인프라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우수 인력을 양성하려면 대학생들이 마음껏 쓸 수 있는 시설 등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도체산업협회는 시스템 반도체 창업부터 실제 제품을 양산하기까지 필요한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반도체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아직 초기 구상 단계이긴 하지만 사무공간은 물론, 실험 장비, 투자 유치 등 전반에 걸쳐 지원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산학연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프로젝트도 더 늘어나야 한다. 미국 반도체 기업과 정부가 함께 만든 펀드인 SRC(Semiconductor Research Corporation)는 매년 1000억원의 자금을 출자해 대학에서 원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력과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차원에서다. 미래 반도체소자 원천기술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돈이 모이는 곳에 학생들도 모이기 마련"이라며 "미국 SRC 모델은 과제에 참가한 대학생을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효과도 낸다"고 말했다.

◆ 반도체 신소재 연구로 장기적인 돌파구 찾아야

반도체 연구자들은 ‘무어의 법칙 폐기’ 이후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신소재 발굴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리콘의 경우 전자의 이동시간이 빠른 데다 가격이 저렴한 특성 때문에 오랫동안 반도체 물질로 애용됐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이 10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이하로 미세해지면서 트랜지스터를 작게 구현하는 게 점차 한계에 다다랐다. 전자 이동속도도 더 빨라져야 하는 문제가 있다.

신소재 개발은 장기적으로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발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신소재로는 그래핀이나 탄소나노튜브, 이황화몰리브덴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물리적·화학적 안정성이 높아 실리콘에 버금가는 반도체 성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2014년 그래핀의 분자구조를 규명하고 웨이퍼 크기의 대면적 단결정 그래핀을 만들 방법을 개발했다. 그래핀의 분자 구조는 반도체 공정의 1단계인 대면적 웨이퍼를 만들기 어려운 다결정 특성을 갖고 있다. 분자 구조가 균일하지 못해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드는 웨이퍼를 생산하는 데 부적합했다. 삼성전자는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와 공동 연구를 통해 그래핀을 반도체 웨이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자 구조 합성법을 개발했다.


 그래핀은 구리보다 전류가 150배 더 잘 흐르고 강철보다 200배 강해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 포토핀 제공
그래핀은 구리보다 전류가 150배 더 잘 흐르고 강철보다 200배 강해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 포토핀 제공
국내 과학자들도 차세대 신소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영희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 연구팀은 올해 초 이황화몰리브덴의 구조와 전기적 특성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황화몰리브덴은 몰리브덴(Mo) 원자 1개에 황(S) 원자 2개가 결합한 물질로 극히 얇은 차세대 반도체 회로 제작에 활용될 수 있다.

실리콘 기판 위에 전기적 특성이 좋고 가격이 싼 화합물반도체를 올리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차세대반도체연구소는 그래핀 등 신소재 기반의 반도체가 상용화하는 데는 아직 시일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실리콘과 화합물반도체를 결합하는 방식의 차세대 반도체 소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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