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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5-02-23 03:05 최종수정 2015-02-23

 

 
[동아일보]

1992년 프랑스와 고속열차 테제베(TGV) 도입 계약을 맺은 정부는 발 빠르게 고속열차의 독자 기술 확보에 나섰다. 고속열차에 관한 기반 기술이 없어 외국 제품을 도입하긴 해도 빠른 시일 내에 국산화에 성공해 국내시장은 물론이고 해외시장 진출까지 노린다는 복안이었다.

1996년 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주도로 한국형 고속열차 개발사업에 착수한 지 3년 만인 1999년 정부는 핵심 기술인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이 경쟁하는 고속열차 국제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게 됐다.

○ 맥 끊긴 R&D 성공 방정식

1990년대 후반까지 정부는 투자 여력이 없는 민간기업을 대신해 연구개발(R&D) 투자를 주도하면서 많은 ‘성공 신화’를 만들어 냈다. 1995년 정부는 고화질(HD) TV, D램 반도체, 차세대교환기(ATM) 사업 등에 2001년까지 1조5000억 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과학기술처 주관으로 7개 부처가 참여할 뿐 아니라 민간기업들도 2조 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민관 합작 R&D 사업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이들 사업은 2000년대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산업동력으로 발돋움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지금도 HD TV 분야의 선두주자가 돼 세계 TV 시장을 이끌고 있다. 또 한국은 지난해에만 반도체 수출로 60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영상과 음성을 전송할 수 있는 ATM 개발은 한국이 휴대전화 강국으로 부상하는 원동력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도 정부는 R&D 투자에 거액을 쏟아부었다. 나노·바이오·우주개발 등 구호도 거창했다. 2006년 9조 원이었던 정부 R&D 예산은 꾸준히 증가해 올해는 18조8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R&D 규모는 세계 1위, 정부 예산에서 R&D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2위다.

이처럼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지난 10년을 돌이켜볼 때 1990년대에 견줄 성공신화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1990년대 투자했던 휴대전화, 반도체, TV 등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이 산업들은 이미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에 직면해 있다. 정부 당국자는 “R&D 투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성과를 평가해야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요즘은 사업화가 가능한 기술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1990년대와 달리 최근 R&D 투자 성과가 빨리 가시화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정부 R&D 투자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경제가 선진국의 과학 기술을 모방하는 ‘추격형’이 아니라 세계경제를 이끄는 ‘선도형’으로 가야 한다는 패러다임이 부상하면서 원천 기술과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쪽으로 정부 R&D 투자가 집중됐다. 그동안 응용·개발에만 R&D 투자가 이뤄져 기초연구가 부실하다는 반성에서 이뤄진 조치였다. 그 대신 응용·개발은 정부가 세제 혜택 등을 통해 민간기업들이 주도하도록 했다.

○ 상용화와 핵심 기술 다 놓쳐

정부가 원천 기술이나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기로 한 것은 맞는 방향이었다. 우수한 원천 기술과 핵심 기술을 확보하면 그 자체만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의 퀄컴은 스마트폰을 구동하는 핵심 칩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1년 갤럭시S를 내놓은 이후 지난해까지 4년간 퀄컴에 지불한 로열티만 10조 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부가가치가 높은 원천 기술이나 핵심 기술 개발이 지지부진하면서 상용화와 핵심 기술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됐다는 점이다.

특허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활용 빈도도 저조하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25개 출연연구원 보유특허의 활용률은 33.5%에 그쳤다. 그 결과 한국은 연간 수십조 원의 R&D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만성적인 기술무역수지 적자국에 머물러 있다.

민간 기업들은 당장 돈이 되는 연구나 상품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단일 제품에 대한 투자에 그쳐 다른 산업과의 연계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 R&D가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 또한 단편적인 수준에 그친다.

미래부 관계자는 “R&D 사업은 설령 실패하더라도 왜 실패했는지를 연구하면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재원 낭비를 줄일 수 있다”며 “그동안 해당 사업의 성패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실패하면 해당 사업이 그대로 중단돼 다음 R&D 사업에 참고가 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가과학기술심의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장무 전 서울대 총장은 “기술 이전 효과가 없는 특허를 아무리 많이 내봤자 소용이 없는 만큼 시작 단계에서부터 산업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연구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대로 연구가 이뤄졌다면 설령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아야 산업생태계를 바꾸는 ‘와해적 혁신’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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