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미세공정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세계 1·2위 TSMC와 삼성전자가 최근 나란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성능, 저전력에 유리한 초미세공정 칩의 채택률이 높아지고 있으나, 워낙 세밀한 회로를 그려 넣어야 하는 기술적 특징 탓에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두 회사 모두 주력 고객사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당장 올해부터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반도체 강자 인텔의 추격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퀄컴은 삼성전자에 맡기려 했던 차세대 3㎚(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을 TSMC에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칩은 내년 출시될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는 회로 간격이 미세할수록 성능이 높아지고, 전력소비가 줄어든다. 또 웨이퍼(반도체 원판)에서 나오는 반도체 숫자가 증가해 생산 효율성이 개선된다. 이런 이유로 반도체 업계는 나노 수준의 기술 경쟁이 한창이다. 다만 현재까지 10㎚ 이하 미세공정은 전 세계에서 TSMC와 삼성 만이 가능하다. 1㎚는 머리카락 한 올을 10만개로 쪼갠 것과 같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작업자가 웨이퍼 원판 위 회로를 만드는 데 쓰이는 기판인 포토마스크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작업자가 웨이퍼 원판 위 회로를 만드는 데 쓰이는 기판인 포토마스크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퀄컴은 4㎚ 공정으로 만드는 삼성전자 플래그십(최상위 기종) 스마트폰 갤럭시S22용 칩도 지난해 삼성 파운드리에서 전량 생산한다는 기존의 방침을 깨고, 일부 물량을 TSMC로 이원화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 파운드리의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재 업계가 추정하는 삼성 파운드리 4㎚ 공정의 수율은 35% 수준으로, 생산된 100개 가운데 65개는 버려지는 셈이다.

앞서 지난해 엔비디아도 삼성 파운드리에 생산을 위탁했던 7㎚ 칩을 TSMC로 바꾼 것으로 업계는 설명한다. 다만 퀄컴은 삼성 파운드리 7㎚ 공정으로 만드는 무선주파수(RF) 칩은 그대로 삼성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강문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1월 회사의 연간 실적발표 당시 “초기에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라며 “공정이 복잡해졌다”고 밝혔다. 실제 5㎚ 공정의 경우 3000개 이상의 프로세스로 구성돼 있는데, 그 이하 공정은 더욱 복잡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 난징에 위치한 TSMC의 팹 16. /TSMC 제공
중국 난징에 위치한 TSMC의 팹 16. /TSMC 제공

애플과 함께 글로벌 팹리스(설계기업) ‘큰손’으로 꼽히는 퀄컴이 삼성 파운드리의 수율에 의문을 가지며 TSMC로 눈을 돌리고 있으나, TSMC도 사정이 딱히 나은 것은 아니다. 올해 하반기 양산을 시작하려고 하는 3㎚ 공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3㎚ 양산을 미룬 TSMC가 내년으로 이 일정을 한번 더 연기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대만 정보기술(IT) 매체 디지타임스와 해외 언론 등에 따르면 TSMC는 3㎚ 공정으로 칩을 만들려고 했던 고객사에 양산 목표를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5㎚ 또는 4㎚ 공정으로 적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수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TSMC의 3㎚ 공정은 애플과 인텔, 엔비디아 등이 주요 고객이다.

특히 엔비디아는 연내 출시 예정이었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3㎚ 공정을 적용하기 위해 TSMC에 약 10조원을 선지급했으나, 정작 3㎚가 아닌 5㎚를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애플 역시 올해 출시 예정인 아이폰14(가칭)에 3㎚ 칩을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TSMC 사정으로 4㎚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AMD도 최신 3㎚ 공정 칩을 TSMC에서 생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5㎚, 6㎚ 공정으로 방침을 튼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AMD는 최근 삼성전자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파운드리를 변경할 가능성도 점쳐지는 중이다.

TSMC는 3㎚ 공정에만 60조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친(親)TSMC로 분류되는 대만 디지타임스조차 우려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TSMC의 초미세공정 경쟁력이 높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3㎚ 공정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술 로드맵을 여러 차례 수정했다”라며 “문제가 지속되면 고객사들이 5㎚ 공정을 계속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가 최근 열린 인텔 투자자 행사에서 웨이퍼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인텔 제공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가 최근 열린 인텔 투자자 행사에서 웨이퍼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인텔 제공

삼성전자와 TSMC가 함께 초미세공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강자 인텔이 파운드리 경쟁에 가세한다. 인텔은 현재 7㎚ 기술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인텔은 올해 하반기 4㎚ 공정 양산을, 내년 하반기 3㎚ 공정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어 2025년 2㎚ 공정까지 노린다. 기술 로드맵대로라면 TSMC나 삼성전자와 거의 대등한 수준의 기술과 양산력을 3년 이내에 확보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미세공정에서는 필수로 여겨지는 ASML의 차세대 극자외선(EUV) 장비도 세계 최초로 도입하기로 했다. 이미 아마존과 퀄컴을 고객사로 맞았다.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인텔의 활약은 이제부터다”라며 “인텔의 혁신은 파운드리 고객에게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했다.